바다의 교향곡

- 시간과 소리를 그린 화가

 


수필가 - 범몽 정임표


 내가 바다를 처음 본 것은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 때였다. 첫눈에 반해 경포 앞바다 속을 바지를 둥둥 걷고 걸어 들어갔다. 그 때의 바다는 나에게 설렘이었다.

 내가 바다를 두 번째 만난 것은 군 생활 때였다. 나는 기관총 사수였다. 군단 사격대회에 참가 하였다. 동해의 푸른 바다 위에 모형 비행기를 띄우고 기총사격을 하였다. 굉음을 내며 나는 비행기 꼬리에는“때려잡자 김일성”, “초전박살”같은 구호가 매달려 있었다. 하늘을 향해 마구 기관총을 쏘아 대었다. 날아간 총알은 죄 없는 바다의 가슴에다“퐁”“퐁”“ 퐁”구멍을 내고 있었다. 그때 바다는 내게 이념이었다.

 그 후로 바다는 수시로 내게 나타났지만 일상이었고 별 의미가 없었다.

 나는 지금 내 생에서 세 번째라 할 수 있는 바다를 눈앞에 보고 있다. 전봉열이 그린 바다그림이다. 나는 전봉열을 모른다. 그러나 그가 그린 바다가 무엇을 전해주는지는 알고 있다.

 사람들은 전봉열을 “바다화가”라 부른다. 그러나 내가 본 그의 그림은 반만 바다이고 나머지 반은 하늘이다. 아니 그 반조차도 참 바다가 아니다. 상징이다.

 그는 바다를 통해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 환희 그리고 회귀를 서사적인 표현기법으로 보여준다.

 생명을 감싸 안은 ‘연리지의 바다’, ‘산란의 바다’가 주는 생명의 앙증스러움, ‘비상하는 바다’가 내뿜는 생명의 환희, ‘황금 빛 바다’가 주는 생명의 황홀, 이런 작품들을 연결시켜 놓고 보면 가히 시적인 환상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화가는 바다와 하늘을 한데 묶어 뭇 생명을 잉태하는 자궁으로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는 바다를 통해서‘보이는 세계의 진정한 주인은 생명’임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대단한 스케일이고 번득이는 영감이다.

 그는 월식(月蝕)에서 자궁 속의 난자를 향해 헤엄치는 생명의 씨앗을 생각해 낸다. 파도에 부서지는 달빛의 산란(散亂)에서는 무수한 생명들이 태어나는 산란(産卵)을 생각해낸다.

 그의 바다는 의식의 세계가 아니다. 2차원의 평면에 4차원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시간은 끝내 휘어져 원을 이루고 영원으로 흐른다는 5차원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개개의 그림에서는 시간이 쉬 눈에 뛰질 않는다. 그러나 그의 그림 전부를 두고 보면 관념에 불과한 시간이 눈으로 그리고 또 귀로 지각된다. 아득한 곳에서부터 영원한 곳으로 이어져 흐르는 시간이 보이고 소리가 들린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연작으로 읽어야 감상의 맛을 더한다.

 지각되지 않는 시간의 세계는 본래 무의식의 세계다. 무의식의 세계가 의식의 세계로 자신을 현신한 그 처음은 의식을 지각하는 생명의 태동이 있은 날로부터이다.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고 땅에는 아직 생명은 태어나지 않았다. 땅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동안 생명이 태어나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그 긴 기다림 속의 어느 날, 하늘과 땅의 언약으로 하늘로부터 생명의 씨앗(영혼)이 바다로 내려와 생명을 탄생시킨다. 바다는 모든 생명의 고향이다. 잉태된 생명은 자라서 힘차게 비상하고 번창하여 이 땅의 주인으로서 복되게 살다가 제가 온 곳으로 돌아간다. 수태한 것이나 수태를 해보지 못한 것(수녀)이나-.

 핏방울 같은 씨앗 하나가 태초의 흑암을 뚫고 하늘로부터 내려온다. 생명의 씨앗이다. 근원이 동일하니 모든 생명은 소중하며 평등하다. 생명은 유한한 것처럼 보이지만 잉태를 거듭하며 영원하다.”

 전체로써 그의 그림은 모든 생명은 소중한 것이며 탄생과 성장과 소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영원하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흰 옷을 입은 수녀나 검은 옷을 입은 수녀는 화가의 트릭이고 생명보다 이념에 치우치고 마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빗댄 조롱이다.

 

 그의 그림은 한마디로 말해 눈으로 듣는 교향곡(symphony)이다. 나는 아직 이런 방식으로 그림을 그린 화가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이 그림들이 연작 그림의 효시라 한다면 역사에 남을 것이다.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무위사 극락보전의 수월관음도를 그리는 파랑새가 보이고, 달빛 아래서 홀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베토벤도 보인다.

 나는 내 생에 세 번째 만난 바다 앞에서 ‘생명 그 거룩한 것’을 이해하고 그 바다가 주는 ‘위대한 매력’에 빠져 이글을 썼다. 내가 처음 바다를 본 그때의 흥분으로 글을 썼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만들어 진다고 한다. 그 1%의 번득이는 영감을 놓치지 않고 잡아낼 수 있는 힘과 능력은 결국 미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전봉열’

 그는 지금 한 마리 파랑새가 되어 바다가 그에게만 보여주는 이야기들을 신들린 듯 그려내고 있다. 어느 눈먼 소녀에게 이끌려 즉석에서 월광소나타를 작곡 한 베토벤처럼 번득이는 영감이 그로 하여금 계속해서 바다를 그리게 하고 있다. 그는 바다가 토해 놓는 더 많은 이야기들을 우리에게 들려 줄 것이다. 섣부른 평을 달기보다는 그 물결이 어떻게 밀려올지 우리는 그냥 기다릴 뿐이다.


*2009년 6월 5일 - 21일까지 경북 청도에 있는 아트갤러리 청담에서 열릴 개인초대전 서문입니다.